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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구름처럼/풍경속으로

모내기

 

 

 

 

 

 

 

 

 

 

 

 

 

 

 

 

 

 

 

아름다움 속에는

얼만큼의 슬픔이 함께 깃들어 있다.

아름다움 속에는

송홧가루 같은 그리움도 함께 묻어 있다.

초가을 대청소날에 장농 밑에서 묻어나오는 송화가루처럼

어느 풍경앞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잊혀졌던 기억들

 

어릴적 나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모내기 풍경은

노동이라기 보다는 동네잔치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직접 일을 한것이 아니기 때문일것이다.

 

넘겨~

양쪽 논두렁에서 못줄을 넘기며 구성지게 외치던 소리

종아리 속으로 반쯤은 파고 들어간 거머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떼어던지던 아버지의 투박한 손

기계처럼 정교하고 규칙적으로 모를 심는 손놀림.

 

또 중간중간의 새참과 들밥은 얼마나 맛이 있었던가

 막걸리를 들고 따라가는 것은 주로 아이들의 몫인지라

나도 모내기 하는 날이면 양은주전자를 들고 논두렁으로 나갔다.

논두렁 풀밭위에 밥 광주리를 내려놓으면

길을 지나던 사람, 아랫논에서 모심던 이웃까지 다 불러 모아 

 빙 들러앉아 들밥을 먹었다.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었을것이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 망태기와 싸리막대기를 들고 논두렁을 다니며

개구리를 잡았었다.

돼지를 주었는지...닭을 주었는지...

지금의 먹성같으면 뒷다리 몇개는 내 차지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입맛이 꽤나 까다로워서 푸성귀 이외의 것은 별로 먹은 기억이 없다.

 

그리고 내가 결혼할 무렵

 오빠의 뜻에 따라 논과 밭을 하나 둘 팔기 시작했다.

모내기철이면 아버지는 마당가에 우두커니 서서

팔린 논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하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오지만

그때는 아버지의 그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길을 달리다가

모내기 준비를 하는 부부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잠시 차를 세웠다.

요즘은 모내기 풍경이 너무 조용해서

몰래 사진 한컷 찍는것도 조심스럽다.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 부인이 힐끗 돌아본다.

괜히 미안해서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이런 풍경조차 그리워지는 그런 날은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2014.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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