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19.
나홀로산우회 42명과 함께.
매표소~ 삼선계단~ 마천대~ 수락폭포갈림길~ 깔딱재~ 안심사
따라가고 싶은 마음을 애써 접으며
제발 자리가 나지 않기를 바랬다.
예비자도 몇명 줄 서 있고하니
이천십오년 마지막달에 산 때문에 고민할 일은 없겠구나.
산 하나를 두고 거창하게 운명 운운해야 하나.
토요일에 놀아주겠다는 사람도 없는데....
빈 자리가 나를 유혹한다.
빈 잔과 빈 자리는 채워야 맛이겠지.
지난 주 옥양봉 오름길에 좀 나아졌구나 하고 스스로 느꼈던 산행에 용기를 얻어
따라 나서기로 했다.
대둔산...오늘이 네번째.
횟수에 비해서 참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대둔산을 찾을 때마다 특별한 추억이 있었기에 그런 느낌이 드나보다.
초겨울의 밤길에도 올라서 산이 떠나가게 웃어도 봤고
늦여름의 더위에 땀을 뻘뻘흘리면서도 올라봤고
스물몇살쯤에는 내려가는 길에 다리가 어찌나 후들거리던지
저절로 개다리춤을 추면서 내려가야했던 대둔산.
가파른 돌계단 오름길은 시작도 하기전에 버거운 짐으로 마음을 누른다.
별수있나.
남들보다 먼저 튀는수밖에.
단체사진을 찍기위해 기다리는 회원들을 뒤로하고 먼저 출발했다.
그런데..이게 웬일이지
컨디션이 좋은건지, 체력이 좋아진건지
내가 생각해도 꽤 잘 오르고 있다.
날씨는 어디에선가 매화가 피어날것만 같이 포근하다.
후두둑 후두둑
고드름이 녹아 떨어지며 꽃잎 떨어지듯 골짜기를 울린다.
동심바위
구름다리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거의 혼자 걷다가 이곳에서 일행들을 만났다.
항상 즐기는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이들을 만나면 마음이 놓인다.
오늘도 내게 꼴찌를 면하게 해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거기다가 도배하다시피 하는 사진까지 남겨준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 전
오늘 내가 갈 수 없는 멋진 조망들을 올려다본다.
돌탑이 보이는 장군봉?과 소나무와 절벽이 멋지게 어우러진 능선길
다음에 다시 걸어볼 날 있겠지.
계단을 오르면 고생 끝이려니 했다.
한고비 넘으면 또 한고비 나오는것이 산길이란걸 잠시 잊었다.
앞서간 일행을 따라갈까,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릴까?
마천대까지 다시 호젓하게 혼자 걷는다.
마천대를 향한 마지막 계단을 앞에두고 다른 일행들을 만났다.
백두대간 두 구간씩을 한꺼번에 하는 베테랑 산꾼들이라 출발할 때 보고는
산행을 끝내고서야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오랫만에 만나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들이다.
마천대에 오르니 한팀의 만찬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친구가 나더러 먹을 복이 있다고 말하곤 했는데
오늘 첫번째 먹을복.
직접 싸서 건네주는 과메기와 두부김치 정말 맛있었다.
한때는 앵두같이 작은 입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이럴땐 입이 큰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우연히 알게 된 까마득한 고향 후배가, 선배라고 잘 챙겨준다.
선배로서 한것이 없으니 모른체해도 할말이 없는데 고맙다.
수락계곡 방향으로 길을 잡고 꽤 가파른 길을 내려갔다.
아이젠도 신지 않고 내려서다가 한 사람이 꽈당 미끄러진 다음에야 아이젠을 꺼내 신었다.
진작에 신을걸
내려가다보니 소화기님이 라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산에서 불을 피우는 것이 좀 거시기 하지만서도
산에서 먹는 라면 맛... 정말 끝내준다.
날씨가 추웠으면 더 맛있었을텐데 맨손으로 걸어도 손이 시리지 않을만큼 포근하다.
바랑산과 월성봉을 배경으로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풍경이 편안하다.
앞에가 월성봉이고 왼쪽 뒷편으로 이어진 봉오리가 바랑산일거라 짐작해본다.
막 출발하려는데 앞서간 일행들이 되돌아서 올라오고 있다.
40분을 더 내려가고 다시 한시간을 올라서야 한다고.
어디까지 올라서야하는건지 잘 모르지만
내려온 길 다시 올라가서 날머리까지 두시간이 걸렸으니 거의 비슷할것 같기도 한데
안가봤으니 잘 모르겠다.
아뭏든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 안심사로 향했다.
산죽밭을 지나고, 너덜길을 지나고
낙엽 푹신푹신한 오솔길을 지나고
길도 희미한 산길을 따라 내려오는 길
험하지 않은 산길이지만 일행들의 걸음을 따라걷기가 조금 버겁다.
안심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2시다.
산악회에서 정해준 시간보다 한시간이나 빠르지만
후미 여섯명 빼고는 모두 내려와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시간을 거의 채워 내려오리라는 짐작에 여유롭게 탁족도 하고
어슬렁어슬렁 안심사 부도밭까지 다녀왔다.
골목 어귀에 있는 어느 화가의 작업실인가보다.
이름이 써 있는데도 누군지 모르겠다.
한자공부를 해야하나.
허름한 건물 입구를 참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놓았다.
바람이 드나드는 꽃문....참 마음에 든다.
나도 바람이 되어 들어가볼까...
나 자신을 시험대에 올린 대둔산 산행.
희망이 보이는것 같다.
저절로 되는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동안 체력탓만 해왔다.
그렇게 핑계라도 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가끔씩 계단 오르기, 잠깐씩 훌라후프 돌리기, 자전거로 청지천 돌아보기.
그 작은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텐데..
'산에서 나를 만나다 > 산행일기(2011~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년 마지막 산행...가야산 (0) | 2015.12.28 |
---|---|
산행다운 산행....옥양봉 석문봉 (0) | 2015.12.16 |
발자욱을 따라서.... 가야산 (0) | 2015.12.15 |
포기하지 않으면 만나게 되더라....청량산 (0) | 2015.11.22 |
두번째 백아산. (0) | 2015.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