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28일 일요일
12:20~ 16:20
혼자서 널널하게
오래전부터 계획이 잡혀있던 마루산악회의 시산제 산행일
그동안의 고마움을 시산제 참석으로라도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만 접고 말았다.
딸 아이의 기숙사 입소일
짐은 미리 챙겨 보내고 소소한 준비만 하면 될터
" 너 몇시쯤 갈래? 엄마 산행 약속이 있는데 가도 될까?"
내심 일찍 가겠다는 대답을 기다리며 물었다.
" 가는 날까지 산이네요. 다녀오세요"
말은 다녀오라고 하는데 서운함이 듬뿍 담긴 말투다.
고민고민 하다가 따순 밥이라도 한끼 더 해 먹여보내야지... 소홀했던 엄마노릇을 하기로 했다.
이른 점심으로 딸아이를 보내고 용현계곡 들어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열한시 40분쯤..친구의 전화
산행 끝내고 시산제 준비를 하고 있단다.
누구에게 데리러 오라고 해볼까 생각을 했었지만 그마저 폐가 될것 같아 그냥 고란사로 향했다.
오늘 겨울산님이 서울에서 오신 손님들을 모시고
용현계곡에서 상왕산~ 석문봉~ 옥양봉~ 수정봉~ 용현계곡 코스로 산행을 한다는 정보에
반대로 돌면 어디쯤에서 만나지겠구나...돌아오는 교통편은 해결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고란사 앞에서 내렸는데 계곡 안쪽으로 들어간 버스가 다시 나올때까지 기다려야만했다.
장갑을 버스에 두고 내렸기때문이다.
목재로 새로 단장한 용현교에 내리는 햇살이 따스해보였다.
다리는 그렇다치고 다리건너 저 구조물은 하지 않았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보호각이 제거되고 난 뒤 마애불을 처음 보았다.
보호각속의 전등불빛아래에서보다 맑은 봄햇살을 받으며 더욱 환하게 웃고 계셨다.
마애불 앞쪽으로 희미하게 오름길이 보였지만 아는 길이 아니어서 조금 내려와 화장실옆 등산로로 들어섰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은 탓에 땅을 가르며 솟아오른 서릿발이 그대로 있었다.
차겁게 날세우고 솟아오른 저 서릿발도 언땅을 뚫고 올라올 새싹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함이라니
자연의 섭리에 고개가 숙여질따름이다.
어느 한 날
어느 한 곳
편하게 오른 산길이 없었지만 오늘도 초입부터 다리가 무겁다.
이런 상태로 정기산행을 얼마나 계속 따라다닐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겨우겨우 능선에 도착하니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의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뒤돌아본 부인과 눈인사를 나누고 한숨 돌리는데 뒤돌아본 남편이 깜짝 놀란다.
때아닌 사람의 출현에 놀라고, 여자 혼자라는데 또 놀라는 눈치다.
인적이 드문 산길인데...혼자서 오지 말라며 함께 가자고 한다.
불청객이 될까 싶었지만 함께 가기로 하고 따라 움직이는데 얼마 못가 그들을 먼저 보내고 말았다.
걸음을 따라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쉬엄쉬엄 수정봉을 향했다.
철탑 임도를 지나 햇살좋은 바위에서 쉬며 앞산을 조망하며 올려다본 하늘이 푸르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떡갈나무 잎이 달그닥거리며 가끔씩 인기척을 내었다
겨우내 붙들고 있던 집착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혼자 걷는 산길에 친구가 되어주려했던 것일까?
나도 잔기침으로 답례를 했다.
수정봉을 지나니 임도까지의 내림길과 다시 옥양봉으로의 오름길이 아늑하게 펼쳐졌다.
건너편의 산 능선들...
몇번쯤 걸었던 길인데도
난 아직도 어느 봉오리가 어느 봉오리인지 잘 모르겠다.
목장 너머 젤 높아보이는 봉오리가 상왕산이겠지.....
몇군데 목장의 푸른 초지가 보였다.
헬기장에서 올해 처음으로 나비들을 만나고 아주 작은 억새평원의 모습을 보니
지난해 봄에 갔었던 화왕산의 너른 억새평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아름다운 평원의 모습이 아픔으로 기억될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도.........
봄처럼 따스하게 풀렸으면...
철탑이 세워진 부근의 임도를 지났다.
옥양봉 2.2km라는 이정표
반때쪽에서 올 사람들을 만나질 시간이 된것 같은데...
만나면 다시 일행을 따라 되돌아갈 생각이었으나 길을 다시 내 걸음으로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쯤에서 만난다면 임도로 내려가볼까 생각을 하며 옥양봉으로 향했다.
옥양봉이 멀지 않은 곳에서 마주오는 팀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그들은 수정봉으로 나는 옥양봉으로 향했다.
고맙게도 상가리로 데리러 와 주시겠단다.
이제부터 더 널널한 산행이 되었다. 아무래도 그들보다 내가 훨씬 일찍 산행을 끝낼것 같았기에
옥양봉 바위에 앉아 까마귀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놀았다.
선입견 때문에 그 울음소리에 스산함이 느껴지기는 하였지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깍 깍 거리며 나는 까마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옥양봉 계곡길로 내려서려 길을 가는데 한 여학생이 금방 폭발할것 같은 모습으로 철벅철벅 걸어가고 있었다.
옆으로 비껴 지나쳐 걸어가는데 앞서가던 아주머니가 우리딸 잘 오고 있더냐고 묻는다.
불만스러워보였지만 잘 오고 있더라고 했더니 ...내려가자는데 그냥 올라왔더니 그런다고 하면서
집에 가서 혼날생각을 하니 걱정이 된다며 웃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가족의 모습이 많이 눈에 뛴 하루였다.
계곡길로 내려오다 상가리저수지쪽으로 길을 틀었다.
저수지의 잔 물결이 햇살에 눈부시게 부서졌다.
여러곳곳이 가뭄에 목말라하고 있는데..이곳은 전혀 그런 기색없이 물빛이 푸르다.
참 좋은곳에 살고 있구나
저수지 방죽아래 돌에 한참을 앉아 물결을 바라보았다.
상가리 방죽아래 있음.....이제 마애불 내림길에 접어들었음.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할것 같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저녁무렵의 날씨가 쌀쌀하다.
주섬주섬 옷을 꺼내입고 일어섰다.
변산바람꽃이나 보러갈까 하는 생각에 일어섰는데 해는 산을 넘어가고 있었고
여태껏도 혼자 걸어왔건만 코 앞의 그곳엔 혼자가고 싶은 생각이 일지 않았다.
그냥 저수지를 한바퀴 돌아 주차장으로 향했다.
딱 주차장 입구에 도착하니 약속이나 한듯이 앞에 서는 차 한대.
시간이 정말 딱 맞았다.
돌아오는 길에 임도를 달려 올라갈수 있는 만큼 최대한 가야봉을 올랐다.
차로 달리며 바라보는 산길이 까마득하다.
그렇게 산행을 끝내고 편안하게 집에 돌아오는 길..도비산 너머로 붉은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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