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2 일요일
서산발 1시 15분 운산해미행 버스
개심사~ 삼거리~ 용현계곡~ 고란사 삼거리 17시 15분 버스
십일월의 첫번째 주말
이번 주말을 놓치면 어쩌면 올해 가야산의 가을을 보기 힘들것만 같다.
개심사의 고즈넉한 풍경도 궁금하고 이미 말라버렸을지도 모를 가야산의 단풍도 궁금하다.
등산이 아니기에 누구를 청하기가 쉽지 않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지만 한사람은 시댁에 벼를 벤다 하고 한사람은 남편과 내장산엘 갔단다.
아들을 구슬려 보았지만 숙제를 핑계로 함께 가려 하지를 않는다.
그래
혼자 걸어보리라
풀밭에 풀을 뜯는 소처럼 천천히..아주 천천히 걸어보리라
그리 마음은 먹었지만 가슴 한켠에 외로움이 밀려온다.
정호승님의 시에서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라고 했지 않는가
외로운걸 보면 난 사람임에 틀림없나보다.
한시 십오분 운산,해미행 버스를 탔다.
다섯살쯤 된 사내녀석이 버스 안에서 장난을 쳤다.
손톱달처럼 감기는 눈웃음이 귀여운 녀석이다
승객은 채 열명도 되지 않았고 그나마 운산에서 거의 다 내려버렸다.
두명을 태우고 달리던 버스는 중간에서 한명이 타고...또 내가 내리고
여전히 두명을 태운 채 달려갔다.
초등학교 앞에서 내려 논두렁으로 접어 들었다.
말랑말랑 잘 익은 고염...예전의 떪은 끝맛의 기억 때문에 그냥 바라만 보았다.
추수가 끝난 가을 논두렁은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다.
봄꽃 인지 가을꽃인지?
주름잎은 지천으로 피어있고, 냉이도 꽃을 피웠다.
제 세월을 잊은 건 꽃들만이 아닐것이다. 과일이며 채소며....
과학의 발달로 인한 인위적인 환경으로 자연계의 많은 부분에 계절의 구분이 무색해지는 것은 아닌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주 천천히 천천히 걸었다.
일단 길을 나서니 생각만큼 외롭지도 심심하지도 않았다.
저수지를 지나 방목된 소들을 몇번인가 보았던 초지를 올려다 보았지만 그곳은 텅 비어 있고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소들이 한가로히 풀을 뜯고 있었다.
저수지를 끼고 걷는 오른쪽 능선과 경사면 풀밭에 소들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었다.
소들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MTB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이 보며 웃고 지나간다.
아마도 사진을 찍는 내 모습도 소떼처럼 한가롭고 평화로워 보였으리라
특별한 소에게 건네는 웃음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혼자 달리는 사람과 혼자 걷는 사람이 느끼는 동질감 때문이었을까?
소들이 열심히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점심을 먹으면서 직원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나서 또 한참을 바라보았다.
먹는 모습이 소를 닮았다고............
나도 이유를 묻지 않았고 그도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기분 좋은 표현이었다.
가을가뭄에 저수지 물이 많이 줄어있었다.
저수 지 가에 피어있는 억새........
은빛으로 빛나는 억새가 세월의 흔적이 곱게 배인 할머니라면
갈대 는 좀 칙칙하지만 허리 꼿꼿한 할아버지 같다.
그래서 나는 억새가 더 좋다.
개심사 솔숲길을 오르는데 흙탕물이 흘러내렸다.
어디 공사를 하고 있는가
올라가 보니 여름에 노랑어리연이 피어있던 연못의 준설작업을 하고 있었다.
수련이며 잉어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되겠구나
개심사는 무척 많은 사람들이 붐볐고 기대했던만큼의 고즈넉한 풍경은 느낄수가 없었다.
명부전 앞에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감나무 두 그루가 환하게 빛났다.
산신각을 지나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산을 올랐지만 땀이 배인다.
혼자이지만 생각만큼 외롭지는 않았다.
중간쯤 오르다 스님과 함께 내려오는 일행을 한번 만나고 용현계곡으로 향하다 올라오는 두명의
산행객을 만났을 뿐
늦은 시간에 혼자서 왔느냐며 걱정을 한다.
네시밖에 안되었는데...........
하긴 요즘 들판에서도 여섯시면 어둠이 내리니 산에서의 네시면 늦은 시간일 수도 있겠다 싶다.
떨어지던 잎새가 내 어깰 툭 쳤다. 우연히 만난 친구가 어깨를 치는 듯 반갑다.
원평리에서 네시 반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고 했는데........
너무 유유자적했나보다. 버스 시간을 맞추려면 서둘러야겠다
에고............
시간에 맞춰 내려왔으나 사십분을 더 기다려 버스를 탔다.
원평리 출발 버스는 이곳을 지나는 버스가 아니란다.
그냥 앉아서 기다리기가 심심해 한정거장 버스를 마중나가서 타고 돌아왔다.
눈에 띄지 않는 갈잎들의 단풍이지만 산빛이 잔잔하니 예뻤다.
가을에는
사색에 잠겨 혼자 걸어보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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