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1일
김주영의 소설 아라리난장을 읽고
방태산은 꼭 가보고 싶은 산이 되었다.
줄거리는 어렴풋하지만 나중에 이들이 수사망을 피해 숨어든곳이 방태산 기슭이었었다.
야생화의 보고라는 주변의 산군들과
우리나라의 삼재불입지처(물, 불, 바람) 라는 삼둔사가리
그 모든것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여기 삼둔사가리에서 둔은 깊은산 계곡에 농사를 지을만한 넓은 땅을 일컫는말이고
가리는 계곡 산비탈에 밭이라도 일굴만한 작은 땅을 말한단다.
삼둔은 월둔. 살둔. 달둔이 있고
사가리는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명지가리가 있는데
오늘 찾아가는 아침가리는 아침나절이면 땅을 다 갈아엎을 수 있다해서 아침가리라한다니
참 소박하고 정감이 가는 이름이다.
오전 6시 서산을 출발
.휴가철과 휴일이 겹쳐 차들로 막혀버린 도로를 버스는 엉금엉금기면서 계속 불편한듯 그르렁소리만
뱉어내고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길고 긴 시간동안
때로는 일행들과 수다에..
때로는 온몸이 근질대는 무료함을 그대로 즐겼다.
영화를 받아올까? 음악을 들을까 궁리를 안한것은 아니지만 무료함에 그대로 몸을 맡기기로 했다.
열두시가 다 되어 도착
방동약수 400미터라는 이정표를 보았지만 모두들 그냥 오른다.
강원도의 물맛은 어떨까?
걷기도 힘든데 자전거의 두바퀴를 굴려 언덕을 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건강한 피부색과 군더더기 없는 살집. 폐달을 밟을때마다 꿈틀대는 종아리의 근육이 아름다웠다.
저들의 열정과 자유와 그걸 누릴 수 있는 여유가 부럽기만 하다.
한시간남짓 임도를 따라 오르는 길은 한낮의 열기로 땅과 몸을 달궈 무척 힘이 들었다.
그런 오름길이 길지가 않음이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쉬이 끝나버린 산행이 한편으론 아쉽기도 하다.
내리막길은 비포장이었지만 꽃과 나비와 향기와 사람들과 함께하는 길이어서 지루하거나 힘들지는 않았지만
먼지를 일으키며 무시로 오가는 자동차때문에 가끔씩 길옆에 비켜 서 있어야만 했다.
깊은 산중답게
길 주변에도 야생화가 많이 피어 있었는데
올해들어 처음 보는 꽃들이 많았다.
주황색 동자꽃이 특히 눈에 띄었다.
동자꽃의 슬픈 전설을 생각한다면 이 깊고깊은 산중에 동자꽃이 많은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조희풀중에서 병조희풀
꽃색깔이 아름답고 꽃모양이 특이하다.
이제는 잎과 결실을 보고도 인사를 나눌 수 있을만큼 산에 많은꽃인데도
올해들어 이곳에서 처음 만났다.
흔한 꽃이면서도 몇년동안 물봉선을 만나지 못했다.
거기다 흰물봉선과는 생애 첫 만남이었는데 어쩐지 무덤덤하다.
흰물봉선으로 손톱에 물을 들이면 어떤 빛깔이 나올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몇번 손톱에 물들였던 봉숭아
첫눈올때까지 손톱에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에
손톱을 자르지도 못하고 길다란 손톱끝에 남은 초승달같은 봉숭아물을 들여다보며 첫눈이 오기를 기다렸었다.
영아자도 지천으로 피어있었는데 이곳의 영아자들은 키가 무척이나 컸다.
영아자 위에 잠자리 한마리가 앉아 있다.
어디로 가야하나 자신의 길을 가늠하고 있는걸까
사람이 오가는 길을 바라보고 있다.
꽃들은 철따라 피고지는것이겠지만
꽃은 나에게 너무나 고마운 존재다.
꽃들과 눈맞춤하는 동안 나의 어깨를 짓누르던 짐을 내려놓게 해주니까
쉬땅나무꽃에 앉은 산제비나비
등에 맴도는 신비로운 푸른빛이 무척 아름답다.
방동약수에서 올라오는 길에는 쉬땅나무가 싱싱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조경동교로 내려서는 길에는 이미 시든꽃이 많았고
할미밀망도 꽃잎 떨군 자리에 산발을 한 결실이 커가고 있었다.
올라오는 길에 하얀꽃덩굴꽃을 보며 고산지대라 으아리가 이제 피었나는구나 했었는데
결실을 보니 그것이 할미밀망 꽃이었던것 같다.
비슷한 고도에서도 해가 들고나는 시간에 따라 이렇게 생육이 다르니
빛이 꽃에게 얼마나 중요한것인지 알겠다.
조경동교 부근에 칡꽃이 한창이어서 향기가 좋았는데
의외로 칡꽃향기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많은것 같았다.
음~ 흠~
꽃에 연신 코를 디밀고는 꽃향에 취해 감탄사를 쏟아냈다.
누군가 칡꽃을 한송이 따서 내게 건네주었는데...꺽인 꽃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경동교 아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하고 있었다.
조경동교에서 직진을 하면 월둔이 나온단다.
계곡 가장자리로 걸으면 젖지 않고도 갈 수 있었지만 시작부터 물에 발을 담그었다.
신발 한켤례로 사계절을 아우르는 처지라 모래주머니 하나 발목에 달고 걷는 셈 치기로 했는데
그다지 무겁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계곡의 돌틈마다 돌단풍이 곱게 자라고 있었다.
늦은 봄에 오면 물살을 들여다보는 돌단풍의 아름다운 모습에 세월을 잊을것 같다.
사람들 모두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즐겁기만 하다.
진정 내게 필요한 것들은 별것 아닌데
지금 이 순간 등에 진 작은 배낭조차도 짐이 되는데
이 순간이 지나면 난 또 불필요한 잡동사니들을 껴안고 시름을 하겠지.
중요한것은 지금 이 순간이니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돌틈의 물이끼때문에 무척 조심스러웠지만
흐르는 물에 연마되어 둥글둥글해진 돌들..
막아선 돌을 외면하지 않고 슬며시 곁을 돌아 흐르는 맑은 물
돌틈에 숨바꼭질하는 작은 물고기들
깊은 물만 만나면 풍덩풍덩 뛰어드는 사람들
반짝 햇살은 받은 계곡은 눈이 부셨다.
그 눈부신 계곡을 사람들은 저마다의 길을 가고 있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맥주병이어서일까
물은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특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에서는 두려움도 더했다.
하지만 함께 한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씩씩하게 물미끄럼을 타고 내려갔다.
결국은 물속 깊이까지 내려가 얼른 올라올 수가 없었다.
잡아 올려줄 때까지 벌컥벌컥 물을 들이킬 수 밖에...
방동약수에 대한 아쉬움의 대신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계곡물이 맑다한들 제정신으로 계곡물을 들이킬만큼 나 자신 순수하지 못했으므로.
작가 정신이란 이런것인가보다.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도 작품을 생각하는 것
함께하는 산행마다 멋진 사진을 남겨주시는 서산새님께서
물수제비를 떠보라는데... 돌은 내 마음도 모른채 물 속으로 퐁당 들어가버린다.
통. 통. 통.. 기분좋게 몇걸음 걸어주면 좋을텐데 말이다.
너무도 평화로운 모습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낚시를 하는 여인도, 곁에서 미소를 머금고 지켜보는 나그네도
한그루 나무인듯. 흐르는 물인 듯.. 고요하기만 했다.
예상보다 늦어진 시간에 발걸음이 부산해지고, 길고 긴 계곡에 지쳐갈 무렵
계곡 옆 오솔길엔 작은 의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 주변에 서 있었던 나무를 베어 뉘어 놓은 듯
통나무 한쪽을 조금 베어내고 이리저리 엮어 의자모양을 하였으나
편히 쉴 수 있을것 같지가 않았다.
그럴 시간여우도 없었고, 앉고 싶은 마음도 일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는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의자가 되어주기를....
진동마을이 보이고 오늘 길은 여기서 멈추었다.
이제 내려놓았던 짐을 찾아 주섬주섬 어깨에 메고 돌아가야한다.
때로는 돌아오는 길의 그 짐들이 내겐 버겁지만
잠시라도 내려놓고 쉴 수 있음을 감사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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